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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위로가 필요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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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경 : 이사야 40장 1-11절

    제목 : 공감의 시대 위로가 필요한 당신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큰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절기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 역사의 큰일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이 땅에 오신 사건이 가장 큰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큰 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 절기에서 대림절은 지키는 것은 과거의 의미도 있지만 미래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대림절 두 번째 주일에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위로에 대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 본문을 소리내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 본문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위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1절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본문에서 말하는 위로는 나카무입니다.

    히브리어 나카무는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에 직면했을 때, 특히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힘과 위로를 주는 메시지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하라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위로하라라고 선포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련에 직면하여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황이어서 힘과 위로가 필요한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로는 그런 것입니다.

    즐겁고 행복하고 기쁠 때 위로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위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어떻게 위로할까?

     

    이사야 선지자는 위로할 때 어떻게 위로하라고 했을까요?

     

    이사야 40장 2절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게 노역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얼마나 힘들었을지 노역이라는 말과 벌을 배나 받았다는 말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힘든 그들에게 어떻게 위로하라고 했습니까?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위로하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위로하라는 뜻은 하나님의 마음에 닿도록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어떤 마음으로 위로하라고 합니까?

    하나님 마음에 흡족하도록 위로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어떤 마음으로 위로합니까?

    인사치레로 몇 번 위로의 말을 전하고 끝나고 있지 않습니까?

    형식적인 방문이나 전화로 위로의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위로는 하나님 마음에 닿는 위로가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 마음에 흡족한 위로를 전하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증언합니다.

     

     

     

    3. 진정한 위로는 공감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장 근접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공감이라고 합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 상황, 경험에 대해 이해하고 그에 대하여 함께 느끼고 같은 감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공감이란 한자 단어는 함께할 공자와 느낄 감자를 쓰고 있습니다.

    공감은 함께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 시대는 공감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공감 능력이 사람들에게 부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시대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6절과 17절입니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예수님께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하셨습니까?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4. 공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이처럼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에 누가 오셨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오셨습니다.

    이 성탄이 바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공감적 사건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죄로 인하여 두 배나 벌을 받은 인간의 마음을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건은 1914년 12월 24일 저녁, 프랑스 플랑드로 지방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은 다섯 달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유럽 변방 곳곳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급조된 참호 속에 웅크린 채 추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독일군과 영군군의 거리는 불과 30에서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참혹했습니다.

    살을 에는 겨울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참호에는 물이 가득했고 병사들 숙소는 쥐와 해충이 우굴거렸습니다.

    화장실이 부족하여 변 냄새가 진동하고 임시로 만든 시설의 오물과 진창을 피해 병사들은 서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렇게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독일군 병사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수천 개에 촛불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위문용으로 보내진 작은 트리에 촛불이 가득히 반짝였습니다.

    트리에서 반짝이는 촛불을 바라보며 독일 병사들이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반대편 참호에서 영군국 병사들이 이 찬송을 듣고 넋을 잃고 바라보다 찬송이 끝나자 환호의 박수를 쳤습니다.

    영군 병사들도 화답하듯 성탄 캐롤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독일 병사들도 환호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독일 병사들과 영국 병사들이 어느 새 참호에서 나와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수를 나누며 담배와 비스켓을 건네고 서로의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고향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지나간 크리스마스 추억을 나누며 이 터무니없는 전쟁을 키득거리며 비웃었습니다.

    그렇게 다음 날 성탄의 아침이 밝아 왔습니다.

    어림잡아 10만 면이 넘는 병사들이 성탄 아침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적이었던 그들,

    서로를 죽이겠다고 총을 쏘며 칼을 휘두르던 그들이 서로 도와가며 죽은 동료들을 땅에 묻고 다 함께 축구 시합을 벌었습니다.

    장교들도 가담하였습니다.

    후방에서 이 사태를 보고 받은 장군들은 병사들의 사기를 해친다며 발 빠르게 전열을 제정비 시켰습니다.

    꿈같았던 크리스마스 휴전은 그렇게 순식간의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결국 1918년 11월 850만 명의 병사들이 싸늘한 시신이 된 후에야 1차 세계 대전은 끝이 났습니다.

     

     

     

     

    5. 예수님을 믿으면 공감이 된다.

     

    서로를 죽이는 전장 통에서 적군에게 어떻게 공감이 일어나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는 위로할 수 있는 공감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곳에서는 고통과 죽음과 파멸, 그리고 착취만 있을 뿐입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는 우리는 하나님 마음에 닿는 위로를 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닿는 위로는 예수님을 믿는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함께 할 때 서로를 죽이는 전쟁터에서도 위로와 사랑과 나눔의 공감이 되살아 납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예수님이 계신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아픔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므로 공감의 마음을 회복하고 이 시대에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위로를 선포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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